코드아일랜드
이 세계를 가장 잘 이해하는 직업, 개발자 | 코드아일랜드 주민 김은휼님
2022년 12월 21일
코드스테이츠 IT커리어 커뮤니티 코드아일랜드에는 커리어를 전환한 다양한 IT 직군 종사자가 있습니다. '주민 이야기'에서는 코드아일랜드에서 활동하는 코드스테이츠 부트캠프 졸업생을 만나 각양각색 커리어 전환 ・ 성장 서사를 들어볼게요.
| 한 줄 요약 |
코드스테이츠 커뮤니티 코드아일랜드에는 다양한 직무 변화를 겪은 분들이 많이 있는데요. 주민 김은휼(이하 Nill)은 기획자에서 개발자로 직무를 변환했어요. 흔히 말하는 ‘문과적 사고’에서 ‘이과적 사고’를 잘 하기까지, 엄청난 노력이 있었을 것 같은데요. 또 한편으로는 개발자가 된 지금, 기획자의 역량이 도움 준 부분이 무엇일까 궁금하더라고요. Nill에게 개발자로서 기획자의 마인드나 역량이 어떻게 도움되고 있는지 들어봤어요.
👩⚖️ 수키 : 오늘 라디오가 특별한 점이 있다면, 게스트와 사적인 친분이 있다는 것인데요. 저희가 알고 지낸 지 벌써 5년쯤 됐는데, 처음 알게 된 당시에 Nill에게는 기획자 정체성이 더 클 때였어요. 지금 개발자의 일을 하고 있지만, 이전에 어떤 일을 하셨는지 소개 부탁드려요.
❤️🔥 Nill : 말씀주신 것처럼 저는 기획자였어요. 교육 프로그램을 위한 교육용 보드게임 콘텐츠 기획을 주로 하다 수키님과 만날 때쯤 사업 기획, 사업 운영처럼 사업가로서의 정체성이 훨씬 커졌을 때였죠. 그때 기획자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커뮤니티를 하게 됐고, 거기서 수키님을 만나게 됐죠.
👩⚖️ 수키 : 자기소개에도 제네럴리스트만이 도달 가능한 영역의 가치를 이해하고, 새로운 정체성을 챙기고 싶다고 말씀하신 이유도 거기서 나왔다고 생각해요. Nill은 42서울을 통해 학습하고 개발자로 직무 전환한 케이스인데요. 그때도 가벼운 수준의 코딩을 할 줄 알았고, 개발자가 되고 싶어서 42서울에 갔다기보단 기획을 더 잘 구현하고 싶은 마음에 간 것으로 기억하거든요?
❤️🔥 Nill : 맞아요. 기획을 구현해 옮기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또, 개발을 할 줄 알 때 기획자로서의 상상력이 더 커질 것이라 기대하기도 했죠. 한편으론 교육에 대해 미션을 갖고 일을 해왔는데, 한계를 느꼈던 것 같아요. 변화는 측정 가능해야 하고 또 기술 중심적이어야 임팩트가 확산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거든요. 그래서 처음 개발을 배울 때는 기획자로서의 열망이 있었던 것 같은데, 배우다 보니 기획이든 개발이든 새로운 미래를 만드는 과정 자체를 즐기는 ‘메이커로서의 정체성’ 때문에 긴 교육 과정을 버틸 수 있지 않았나 싶어요.
👩⚖️ 수키 : 메이커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더 풀어서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요. 무언갈 만들고, 창조하는 사람이라고 이해하면 될까요?
❤️🔥 Nill : 구체적인 용어로 쉽게 얘기하면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의 정체성은 나뉘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현재 저는 신사업팀에 있는데, 저희 팀 같은 경우는 개발자, 디자이너, PM과 같은 역할적인 구분은 있지만 개발자도 디자인에 대해 문제가 있으면 피드백하고, 필요한 기능이 있으면 기획 영역에 경계 없이 넘나들며 일하고 있거든요. 그래서 저희 팀 자체를 목적 조직을 떠나 모두가 메이커인 팀이라고 정의하는데, 이 예시가 메이커로서의 정체성을 설명하는데 쉽게 전달될 수 있을 것 같아요.
👩⚖️ 수키 : 아주 명료하네요. 42서울에서 2년 정도 학습하고, 바로 취업에 성공했나요?
❤️🔥 Nill : 42서울에서 개발을 공부한 건 1년 2~3개월 정도 됐던 것 같고, 그 뒤로 취업을 준비하는 데 반년 좀 넘게 걸렸던 것 같아요. 9개월 정도?
👩⚖️ 수키 : 9개월 정도 준비하고 개발자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하게 된 거죠? 그 당시에 다른 옵션이 있었을 것 같은데 지금 다니는 회사를 선택한 이유가 있나요?
❤️🔥 Nill : PO, 인하우스 컨설팅 관련된 일, 개발과 교육, 기획이 섞인 일도 제안받고, 저를 아는 분들이 개발자 이외의 포지션이지만 개발과 관련이 없진 않은 포지션도 제안해주셔서 직무부터 고민이기도 했어요. 그런데 개발자를 직업으로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기획자로 돌아가거나 다른 직업을 갖게 될 때의 제 모습이 성장하는 쪽으로 잘 그려지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동안 해왔던 일의 반복이거나 성장하는 데는 한계일 수도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직관적으로 들었던 거죠.
그런데 개발을 배우며 가장 많이 깨달았던 것은 개발자는 코드라는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래서 모든 직업에 대해 상상해봤어요. “다양한 직군을 가진 사람이 나오는 소설을 읽었을 때, 소설 속에 나오는 세계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직업은 뭘까?”하고요. 저는 개발자라고 생각해요. 개발자는 소설 안에 등장하는 모든 존재, 사물, 공간, 사람, 동작들을 본능적으로 기억하고, 파악하고, 이해하고, 분석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떻게 하면 세계를 창조하고 변형하는 기술을 배울 수 있을까 고민하다 소프트웨어 설계라는 학문이 공부할 게 너무나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그래서 개발자라는 직업을 갖고 더 공부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 수키 : 메이커로서의 정체성은 기획자, 디자이너, 개발자를 구분 짓지 않고, 어떤 세계를 창조하는 것이라고 이해했는데 그중에서 더 해보고 싶고 알아가고 싶은 건 개발의 문법이었군요.
❤️🔥 Nill : 맞아요. 개발의 문법은 결국 환경 혹은 어떤 세계의 구조를 창조하고, 유지하고, 바꿔나가는 기술이거든요. 그 기술은 메이커로서 정말 중요한 역량인데, 일반적으로 다른 포지션에서는 가르쳐주지 않는 것 같아요.
👩⚖️ 수키 : 지금 말씀하신 어떤 체계를 만드는 것,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구조나 시스템을 개발로 경험하다 보면 읽는 관점이 생길 거라고 이야기해주셨는데, 개발뿐만 아니라 다른 영역에서도 익힐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럼에도 개발을 선택한 이유는 학습하면서 만난 세계가 낯설고 새로웠기 때문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 Nill : 정말 새로웠어요. 조영호 님이 쓰신 ‘객체 지향의 사실과 오해’, ‘오브젝트’와 같은 책들이 정말 충격이었거든요. 단순히 객체 지향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창조하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로 읽혀서, 되게 흥미로웠던 것 같아요.
📚 Nill이 추천하는 ‘세계를 창조하는’ 개발자를 위한 책 list
👩⚖️ 수키 : 다음 주제로 넘어가볼게요. Nill이 예전에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기억나요. 개발자로서의 성숙함이 연인간의 사랑에도 영향을 미칠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에세이를 쓰고 있다고 이야기했는데, 너무 재밌다고 생각했거든요. 어쩌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지 궁금해요.
❤️🔥 Nill : 제가 ‘아트 오브 게임 디자인’이라는 책을 정말 좋아해요. 게임 디자인에 관한 책인데요. 그 책에 이런 예시가 나와요. 저자가 플리마켓에 갔는데, 길거리에서 누가 저글링을 하고 있었대요. 근데 그 저글링이 일반적인 동작과는 너무 달랐고, 크리에이티브하고 우아해서 한참 보게 됐대요. 그래서 저글링하는 사람에게 당신의 저글링이 왜 그렇게 특별한지 물어봤더니 이렇게 답했다고 해요. “다른 ‘사람’한테 배운 게 아니라 자연이나 오리, 백조, 물, 풍차 등 일상적인 자연으로부터 가져왔기 때문이에요.”라고요.
사실 개발자가 잘하는 일 중 하나가 달라보이는 것들 중에서 닮음을 찾아내고, 본질적인 닮음을 찾아 추상화하고, 거기서 이점을 취하는 것이라 생각하거든요. 코드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닌 삶에서 접하는 다양한 주제, 도메인, 맥락 안에서도 일상이 같이 숨어있다는 것을 배웠던 것 같아요. 그 뒤로는 일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어요. 무언가를 잘하면, 어딘가에 써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생겼고요. 그 책과 함께 ‘만약 헤밍웨이가 자바스크립트로 코딩한다면’이라는 책도 재미있게 읽었어요.
📚 Nill이 추천하는 ‘일상을 보는 시선을 바꾸고 싶은’ 개발자를 위한 책 list
👩⚖️ 수키 : 그 책은 어떤 내용인가요?
❤️🔥 Nill : 만약 헤밍웨이가 코드를 짠다면 문학적인 문체나 패턴, 글에 대한 사상을 어떻게 코드로 표현할지, 어떤 스타일의 코드를 쓸 건지에 대해 상상한 책이고, 셰익스피어나 제인 오스틴 등 다른 작가들에 대한 자바스크립트 코드도 같이 들어가 있어요. 이런 책이 되게 재미있더라고요.
👩⚖️ 수키 : 상상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어쩌다 사랑이라는 주제로 넘어갔는지 궁금해요.
❤️🔥 Nill : 아까 얘기한 ‘객체 지향의 사실과 오해’ 책과 함께 객체 지향에 대해 공부하다, 결국 코드는 언어가 아니라 자율적인 객체들의 관계를 잘 상상하고 디자인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책에서 이야기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은 자율적인 객체들이 협력해 하나의 세계를 만들고 바꿔나가는 환경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 결국 객체들의 공동체, 협력적인 공동체라는 말이 넓은 의미에서 사랑과 닮아있지 않나? 생각하게 되었어요.
👩⚖️ 수키 : ‘협력적인 공동체’라는 단어를 ‘마을’의 범위로 생각할 수도 있잖아요. 사랑도 다양한 종류가 있을 텐데, 말씀주신 사랑은 1:1의 관계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마을처럼 넓은 범위보다 연인간의 사랑에 집중한 이유도 궁금해요.
❤️🔥 Nill : 제가 살면서 연애를 계속 해오다 개발자로 회사에 취업하면서 결심한 게 있어요. 1년간 연애를 하지 않겠다. 새로운 직무에 적응하고, 1인분의 몫을 해야 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렇게 연애 금지 기간이 지난달에 풀렸습니다. 그래서 한창 사랑 생각이 나더라고요. 생각하는 김에 이런 쪽으로 고민을 더 해보면 재미있는 포인트가 생기겠다는 판단을 했어요.
👩⚖️ 수키 : 이 질문을 안 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Nill은 사랑을 뭐라고 생각하나요?
❤️🔥 Nill : 너무 어려운데요. 요즘 다들 이상형을 만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외모든, 학력이든, 성격이든 상대방에게 바라는 게 있잖아요. 서로 원하는 ‘관계의 모양’이 있는 거죠. 내가 원하는 사랑이 뚜렷하게 있고, 그 사랑이 필요한 사람을 찾는 느낌이에요. 살면서 내가 타협할 수 없는 부분, 내가 상대에게 바라는 부분들이 더 뾰족해지고 구체화되는데, “이게 맞나?” 스스로 묻게 되는 것 같아요. 결국 사랑이라는 건 어떤 모양으로 굳어진 내가, 내 사랑의 형태에 필요한 사람을 채워 찾으려는 거죠. 그런데 그게 아니라 상대가 가진 고유성을 발견하고, 인정하고, 그 사람과만 만들어갈 수 있는 관계를 디자인해가는 게 지금 필요한 사랑의 형태가 아닌가 생각해요.
👩⚖️ 수키 : 예전에 이상형이 뭐냐는 질문에 ‘서로가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이라고 대답한 기억이 나요. 나의 세계, 당신의 세계가 있을 텐데 하나의 세계에 종속되는 게 아니라 교집합을 갖고 더 넓은 세계관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고, 그땐 그게 사랑이라고 생각했었죠. 그 이후로 “사랑은 뭘까?” 생각하는데, 그때그때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런데 Nil에게는 개발을 가장 가까운 도구로 사용하면서, 사람들과 연결하면서 얻는 깨달음이 있을 것 같아요. 어떤 걸 발견했는지 듣고 싶어요.
❤️🔥 Nill :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개발자 안에서도 직무가 나뉘잖아요. 저는 프론트엔드 엔지니어다 보니 색에 민감해지더라고요. 회사마다 달라서 일반화하기엔 조심스럽지만, 예를 들어 주황색을 쓴다고 하면 보통 주황색이 아홉 단계로 나뉘거든요. 회사마다 채도나 명도에 따라 나누고, 물론 모든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이런 일을 하지도 않아요. 마크업하고 갖다 쓰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런데 일상 속에서 주변 사람들이 염색하는 게 더 잘 보이더라고요. 보다 보면 “저게 무슨 색일까?” 고민하게 되고, 디자인 시스템을 이해하다 보면 색이 갖는 의미나 색이 주는 뉘앙스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되거든요. 그런 포인트들이 프론트엔드 엔지니어에겐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색에 대해 민감해지는 성격이 꽃을 고를 때에도 영향을 미치고, 사소하면서도 실질적인 변화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 수키 : 센스 있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이군요.
❤️🔥 Nill : 그렇죠. 그리고 개발자는 보통 프라이버시의 전문가가 된다고 생각해요. 개인정보에 대해서도, 사람에 따라, 직무에 따라 민감해지는 것 같아요. 무엇을 개인정보로 규정하는가, 그리고 그 개인정보의 흐름 때문에 개발자가 되고 나서 이전에는 개인정보라고 생각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해 더 섬세해진 것 같아요. 지금 속해있는 팀이 신사업팀이라 더 그런진 모르겠지만, 개인정보보호법도 찾아보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사람을 만날 때에도 “이걸 물어봐도 되나?” 혹은 “이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주변인에게 전달해도 되나?” 같이 정보에 대해 더 민감해지는 부분들이 있어요.
👩⚖️ 수키 : 지금까지는 사랑에 초점 맞춰 이야기했다면, 개발자가 된 뒤 달라진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면 재미있을 것 같은데요.
❤️🔥 Nill : 개발자가 되고 나서 본능적으로 길러진 힘 중 하나가 반복되는 비효율적인 문제를 발견하는 능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어느 순간부터 일상 속에서 비효율적인 일이 반복되면 그렇게 거슬리더라고요. 예를 들어, 어느 날 부모님 댁에 갔는데 건조기가 없이 빨래하고 계신 모습에 굉장히 비효율적이라고 느꼈어요. 빨리 건조기를 사드려야 된다고 깨달았죠. 개발자라는 직군의 절반은 새로운 제품을 만든다 하더라도, 나머지 절반은 제품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관찰하고 해결하는 일이다 보니 주변을 관찰하는 시선도 생겼어요.
👩⚖️ 수키 : 또 다른 예를 한번 들어볼 수 있을까요?
❤️🔥 Nill : 정보를 받아들이거나 뱉을 때 어떤 규칙들이 있는지 보는 것 같아요. 꼼꼼한 개발자들은 입력과 출력에 대해 항상 유효성 검사를 진행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것이 일상으로 옮겨와서,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 혹은 대화를 할 때에도 저의 언어를 검수하는 습관이 생겼어요.
👩⚖️ 수키 : 매번 스스로를 검수하는 습관이 피곤하진 않은지도 궁금해요.
❤️🔥 Nill : 이 습관이 결국에는 자연스러워져야 하는 것 같아요. 의식해서 노력해야 하는 것들은 피곤하잖아요. 그래서 의식하지 않을 만큼 익숙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 수키 : 그렇다면, 개발자로서의 성장이나 성숙은 이전 커리어에서 경험한 것과는 어떻게 달랐나요?
❤️🔥 Nill : 기존에 해왔던 일들은 만들고 지나가는 일이 많았던 것 같아요. 이벤트를 열고, 콘텐츠를 만들고, 상품을 만들어 팔고 끝나는 거죠. 시간적으로 지나가는 일이었고, 계속해서 미래를 보는 일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개발은 여러 명이 하나의 제품을 계속해서 지켜보는 것 같아요. 한 명의 아이를 키우듯이 말이에요. 유치원 선생님은 아이들을 떠나보내지만, 부모는 아이를 계속해서 돌보잖아요. 그 차이인 것 같아요. 서비스를 계속해서 관찰하고, 애정을 쏟으면서 돌보는 것이 가장 큰 차이인 것 같아요.
👩⚖️ 수키 : 저도 Nill처럼 이전에는 만들고 지나가는 일을 주로 했던 것 같아요. 새로운 그림을 만드는 것이 재미있던 상황이었다면 지금은 코드아일랜드라는 하나의 프로덕트를 잘 만들고 싶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중인데요. 지금 제가 하는 일련의 선택들이 영향을 많이 주더라고요. 그래서 이 서비스에 막연한 공포감 같은 게 조금은 있기도 해요.
❤️🔥 Nill : 결국 공포는 두 가지로부터 온다고 생각해요. 알 수 없는 미지의 것이거나 알지만 되돌릴 수 없는 비가역적인 것일 때 두렵다고 생각하거든요. 지금까지 기획자로서 프로덕트를 만들고 제품 생산까지 했는데, 제품에 하자가 있을 때 되돌릴 수 없으니 당연히 두렵잖아요. 또, 만들었는데 사용자에게 정말 좋은 변화를 주는지 모르니 두렵고요. 그런데 IT 제품을 만드는 일은 그렇지 않더라고요. 제가 하는 일이 제품이나 서비스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즉각적으로 인지할 수 있고, 배포 후에 1-2시간이면 좋은 기능인지 아닌지 데이터로 측정 가능하다는 것이 개발자로서 두려움을 없애는 안정감이라고 생각해요.
👩⚖️ 수키 : 예전에 Nill은 개발을 배우고 싶었던 이유 중 하나로 측정이 가능한 점을 들었는데, 여기서 연결되는군요.
❤️🔥 Nill : 개발자마다 회사 상황에 따라 강점을 갖는 역량이 다를 것 같은데, 제가 가진 역량은 데이터 쪽이어서 더 공감되는 것 같아요.
👩⚖️ 수키 : 앞으로 또 어떻게 발전할지 흥미로운데요. 지금까지 사랑에 대해 이야기나눈 것과 반대로 ‘사랑이 개발자로서의 성숙함에 도움이 될까?’도 궁금해지는 것 같아요.
❤️🔥 Nill : 당연히 된다고 생각해요. 제 인생의 최악의 데이트 중 하나는 기념일이었는데, 모든 게 계획대로 풀리지 않은 날이 있었어요. 어딜 갔는데 문이 닫혀있었고, 플랜 B로 세워둔 곳에 갔는데 또 휴일이고, 새로 찾아서 갔더니 브레이크 타임이었던 날이 있었거든요. 심지어 연인과 싸웠고, 결국 아무것도 못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간 적이 있었어요. 그때 준비와 실행을 분리해야 된다는 것을 배웠어요. 사전에 모든 준비가 끝나 있어야 데이트 과정에서 변수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배운 거죠. 그 뒤부터는 계획을 엄청 세웠어요. 일어날 수 있는 변수를 사전에 파악하고, 필요한 것들을 마련하고, 당일에는 경험 자체게 집중하자는 습관을 가졌는데, 나중에 개발자가 되고 보니 데이트 과정으로 잘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누구나 첫 연애 때는 엄청 싸우고, 스트레스나 갈등, 문제의식을 표현하는 데 있어 서툴잖아요. 상대방이 바뀌기를 원하기도 하고요. 동료랑 코드 리뷰를 하는데, 코드 리뷰에 대해 어떤 문장으로, 태도로 대화하는지도 그 언어적인 방법들이 영향을 많이 미친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개발을 잘하기 위해 사랑을 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사랑에 충실해 잘 하다보면 도움되는 부분은 분명 있는 것 같아요. 엔지니어가 사용자를 위해 헌신하는 측면이 있듯 연인 사이에서도 헌신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잖아요. 자연스럽게 영향을 준다고 생각해요.
👩⚖️ 수키 : 그러니까 넓은 의미에서 결국 사랑도, 개발자라는 업무도 관계를 구축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연결될 수 있는 지점들이 있다는 이야기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오늘 대화 나누면서 개발자로서의 성장뿐만 아니라 커리어 여정에서 알게 되는 깨달음이나 일, 사랑과 우정 모두 ‘관계’라는 키워드 안에서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듣고 계신 분들도 나의 상황이나 상태, 추구하는 가치와 어떤 상관관계를 가져갈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좋을 것 같고요. 발견하게 된다면 공유 부탁드립니다.
글 김수진 Community Content Mana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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