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IT 스타트업 신입 기획자의 포트폴리오는 반드시 ‘이것’을 포함합니다
2023년 05월 16일
현업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코드스테이츠 수료생 필진이 직접 작성한 포스팅입니다. 수료생이 취업 준비를 하며 배운 점, 신입으로서 실무를 하며 느낀 인사이트를 나눕니다.
안녕하세요, 스타트업 CX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김은미입니다. 🔗1400명이 읽어본 주니어 PM 노션 포트폴리오는 어떻게 생겼을까? 에 이어 이번에는 IT 스타트업의 신입 기획자로 커리어를 시작했던 제 포트폴리오 제작 과정을 요리에 빗대어 소개할게요.
최근 티빙의 디저트 서바이벌 <더 디저트>에서는 된장, 고추장, 간장으로 디저트를 만들라는 미션이 떨어져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요리 경연 프로그램에서는 이처럼 재미를 위해 스테이지마다 보너스 또는 핸디캡을 부여하곤 합니다. 특히, 요리의 ‘재료’에 제약이 걸리는 경우가 가장 흔합니다.
신입으로서 포트폴리오의 첫발을 떼려는 여러분들 또한 짭짤한 장류로 디저트를 빚어내야 했던 <더 디저트>의 참가자들과 비슷한 마음일 거라 생각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처음부터 설탕, 버터, 밀가루처럼 달콤하고 그럴싸한 재료를 거머쥔 것도 같아 속상하기도 하겠고요.
그러나 디저트의 재료로는 부적합해 보이는 이 재료를 활용해 창의적인데다가 맛있기까지 한 디저트를 만들어내는 참가자들도 분명 있었습니다. 심사위원 중 한 명은 “된장은 그대로 쓰면 군내가 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지만, 참가자들은 참깨 튀일, 배 크림 무스, 캐러맬라이징 백태 등 된장과 가장 잘 어울리는 조합을 선보이며 미션을 당당히 통과했죠.
어떤 직무보다도 기획자의 포트폴리오에는 이와 같이 낯선 재료를 조화롭게 그러모으는 역량이 중요하게 작용하는데요. 이번 글에서는 저의 사례를 들어 이와 관련한 노하우를 풀어 보고자 합니다. PM, PO, 서비스 기획자 등 IT 프로덕트에서의 기획 직무를 꿈꾸는 분들이 다른 사람과 차별화되는, ‘나만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나가는 출발점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020년 말, 저는 졸업을 몇 달 앞두고 불안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디지털 서비스에서의 기획 직무를 지망하고 있었음에도 IT 관련 지식과 경험을 거의 갖고 있지 못했어요. 그때부터 ‘왠지’ 포트폴리오 하나 쯤은 있어야 할 것 같아 노션을 만지작거리긴 했는데요. 텅 빈 창을 앞에 두고 몇 글자 적었다 치우거나 다른 사람의 멋진 포트폴리오를 구경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썼어요.
이유는 단순했죠. 쓸 말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이 경험은 직무와 무관해 보이고, 이 경험은 깊이가 없어 보이고, 이 경험은 대학생 수준에 지나지 않고……. 저의 포트폴리오가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에 대한 집착은 점점 커졌고, 무언가 끄적대고는 있지만 아무것도 완성되어 가고 있지 않는다는 느낌에 괴롭기도 괴로웠어요.
여러분은 불안과 공포의 차이를 아시나요? 먼저, 공포는 현재의 즉각적이고 반사적인 반응이에요. 흉기를 든 사람을 맞닥뜨리거나, 귀신이 갑자기 튀어나왔을 때처럼요. 공포의 크기는 공포감을 불러일으키는 대상의 구체성에 의해 결정되곤 해요. 반면, 불안의 근본은 불확실성에 있어요.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을 때, 저편에 무언가 도사리고 있는 것 같기는 한데 그것의 정체를 알 수 없을 때 우리는 불안을 느낍니다. 그래서 “앎으로써 불안을 잠재울 수 있다”고도 이해할 수 있죠.
그때의 제가 많은 도움을 얻었던 건 뜻밖에도 책상 구석에 놓여 있던 한 검사지였어요. 대학교 3학년 때 들었던 전공필수 과목 <진로와 직업 선택>의 강의 자료였죠. 학창 시절 중 누구나 한 번쯤은 받아 봤을 평범한 검사였고, 유의미해 보이지도 않았기 때문에 당시에는 그렇게까지 진심으로 임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오랜만에 꺼내 본 검사지에 “당신이라는 사람은 이렇습니다”라고 낱낱이 적힌 내용을 읽어 보니, 놀랍게도 그것만으로도 두터운 안개가 걷혀가는 듯했어요. 검사 결과의 실효성이나 유용성과는 별개로 ‘나’라는 사람이 정의된 어떤 형태를 목격했다는 것 자체에 의미가 컸던 것 같아요.
그때를 기점으로 저는 ‘나’에 대해 알아갈 수 있는 활동에 진심을 다하기 시작했어요. 일상 곳곳에서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경향성을 띠는지, 어디에서 활력을 얻는지를 의식적으로 관찰하고 기록하기 시작했죠. 요리사는 텃밭이나 마트에서 식재료를 마련하지만, 저는 포트폴리오의 재료를 이런 식으로 직접 재배하고 수급해 왔습니다.
“시간과 돈의 제약이 없다고 가정할 때, 나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제가 요즘도 시시때때로 자기 자신에게 던지곤 하는 질문입니다. 처음에는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보편적인 대답밖에 떠오르지 않았어요. 관광지에서 휴양하기, 밤새 게임하기, 늘어지게 낮잠 자기……. 이대로는 답이 나지 않을 것 같아 그것마저 다 하고 난 뒤에는 무엇을 하고 있을 것 같은지 상상해 보기 시작했죠.
저는 일상의 많은 시간을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보내요. 아침에 일어나서는 뉴스레터를, 밥을 먹을 때는 브이로그를, 휴식하면서는 책을, 자기 전에는 팟캐스트를 감상해요. 그래서 시간과 돈이 남아돈다면 제가 보고 들은 좋은 콘텐츠를 가까운 사람들에게 진심을 다해 추천하고 있을 것 같았어요. 제가 알고 있는 그 사람의 특성에 꼭 맞춘 콘텐츠를 추천하는 데 모든 수단을 총동원하며 어떻게든 제가 느낀 경험을 상대방도 체험하길 설득할 것 같았죠. 어떤 매개를 통해 상대와 연결된다는 감각이 저에게 중요하다는 걸 그때 깨달았어요. 또, 상대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어떤 행동을 하게끔 유도하는 데도 관심이 많다는 걸 발견할 수 있었어요.
반면, 저의 친구 A는 같은 상황이라면 자신과 부모님의 일상에서 비효율적으로 굴러가고 있는 부분을 싹 정리하고 고치는 데 시간을 쓸 것 같다더군요. 복잡하게 얽힌 콘센트를 재배치하거나, 과하게 지출되는 보험료를 절감하면서 일상 속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싶다고요. 실제로 현재 A는 보안 회사의 개발자로 일하며 깨끗한 코드(Clean Code)를 작성해 개발 업무 전반을 효율화하는 데 강점을 보이곤 해요.
이처럼 골똘히 고민하다 보면 자유로울 때의 나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고 있을지가 그려지고, 이 행동들 간의 공통점이 드러나기 시작할 거예요. 답은 한 번에 나지 않을 수 있어요. 시시때때로 나 자신과 대화를 시도하며, 처음 만난 사람이 서로 알아가는 단계를 갖듯 차분하고 성의 있게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저는 여전히 질문에 답을 내리기를 반복하면서 저 자신에 대해 새롭게 깨닫는 바가 있으면 포트폴리오 페이지에서도 이를 적극적으로 드러내곤 해요. 저에 대한 간략한 소개 글을 주기적으로 수정하면서 좀 더 구체적으로 저 자신을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이를 포트폴리오 페이지 내 상단 영역에 배치해 저라는 사람에 대해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의도했어요.
지금,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저는 개인적으로 홈페이지 형태의 포트폴리오를 애용하는데요. 이유는 포트폴리오에 실시간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에요. 물론 파일 형태의 포트폴리오도 꾸준히 업데이트한다면 최신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죠. 다만, 포트폴리오는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데 그 목적과 역할이 있는 결과물이기 때문에, 실제로 업데이트가 주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과 그렇게 ‘보이는 것’ 사이에 존재하는 간극을 메꿔 줄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 포트폴리오를 열람하는 사람에게 파일 형태보다는 홈페이지 형태로써 방금 업로드된 따끈따끈한 근황이 있다는 점을 어필하기가 더더욱 편리하고요.
저는 위 사진과 같이, [NEW!] 표시를 덧붙인 토글을 활용하여 저의 근황을 요약한 영역을 마련했어요. 채용담당자가 제가 걸어온 길을 일목요연하게 그려 볼 수 있는 일종의 연표를 제공한 셈이죠. 기획자는 하드 스킬로 어필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기 때문에 이와 같은 영역이 더더욱 중요할 수밖에 없어요. 특히 저는 이 일 저 일 벌리는 걸 워낙 좋아하고 제너럴리스트로서의 정체화에 관심이 많다 보니, 이와 같은 영역이 꼭 필요했어요.
기획자가 포트폴리오를 통해 각별히 신경을 써서 드러내야 할 부분은 이처럼 자기만의 커리어 스토리에요. 여러분의 포트폴리오를 읽는 채용담당자에게 자신이 어떠한 여정과 고민을 거쳐 이 회사에 지원 버튼을 누르는 순간까지 도착하게 되었는지를 또렷하게 드러낼수록 좋아요.
또, 신입이 가장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는 부분은 회사, 산업, 직무에 대한 로열티라는 점을 기억해야 해요. 채용담당자가 지원자의 역량에 대해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에요. 단, 해당 회사의 채용담당자만 볼 수 있는 자기소개서에서는 회사와 산업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동기를 드러내되, 모두에게 공개되어 있거나 여러 회사에 제출할 포트폴리오에서는 직무 지원동기를 강조해야겠죠. 이 직무를 언제부터, 어떤 이유로, 어떤 방식으로 꾸준하게 추구해 왔는지 잘 드러낸다면 충분히 본인의 강점을 소구할 수 있을 거예요.
저는 취업 준비를 하면서 마음이 복잡할 때마다 가족, 친구와 전시회를 보러 가곤 했어요. 얼마 전에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가장 좋아하는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전시회를 구경하고 왔어요. 같은 미술관에서 영화감독 팀 버튼과 팝아트 화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전시를 봤던 적도 있는데요. 같은 공간에서 다른 주제로 꾸려진 전시를 감상하며 저는 새삼 전시 큐레이터의 대단함을 실감했습니다.
전시 큐레이터는 전시회에서 전시되는 작품의 테마와 콘셉트를 결정하고, 관람객들이 작품을 이해하고 더 잘 감상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사람이죠. 전시 공간을 디자인하고 전시 작품들의 배치, 조명, 소리 등을 조절하는 것뿐만 아니라, 전시 중에는 관람객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하기도 합니다. 결국 전시 큐레이터의 미션은 관람객들에게 전시의 주제와 대상을 더 잘 이해시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죠.
저는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취업 준비생 또한 전시 큐레이터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포트폴리오를 전시장과 같은 3차원 공간이라고 상상해 볼까요? 그렇다면 이 장소에 방문할 사람들, 즉 채용담당자들에게 나 자신을 가장 효과적으로 이해시킬 수 있도록 요소 하나하나를 전략적으로 기획하는 노력이 필요하겠죠. 각 전시 섹션과 출입구, 복도 기념품점, 하다못해 공간의 조명, 온도, 습도부터 각각의 작품 옆에 붙은 작은 설명글까지도요. 그런 크고 작은 요소에서 방문객들은 전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인상을 얻을 수 있을 거예요.
기억해야 할 것은 전시회에서 모든 그림을 돋보이게 할 순 없다는 거예요. 수많은 걸작을 남긴 화가의 전시회라고 할지라도 관람객에게 특정 시기나 사건에 그려진 작품을 중심으로 구성할 수밖에 없죠. 모든 작품이 다 중요하다고 강조하면 관람객은 어떤 경로를 따라가며 전시를 감상해야 할지 혼란스러울 거예요. 이 점을 포트폴리오를 제작할 때도 적용해 보며 나의 수많은 경험 중 무엇을 ‘메인 테마’로 삼아야 할지 고민해 보면 좋겠습니다.
결국 신입 기획자의 포트폴리오를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보여야 할 것은 다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입니다. 제너럴리스트에 가까운 직무일수록 포트폴리오에서 보편적인 이력, 스킬, 지식 대신 ‘나’라는 개인이 또렷하게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의 경우에도 포트폴리오 페이지의 최상단은 저만의 고유한 이야기와 경험이 녹아 있는 영역으로만 가득 채우는 선택을 했어요.
이때 중요한 건 나의 과거를 버리지 않고 가져가는 거예요. 평균보다는 개인화가 중요한 이 시대에는 나의 모난 부분을 도려내는 대신에 이를 예리하고 뾰족하게 다듬어 갈 수 있어야 해요. 저는 IT 업계 취준생들 중 단연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는 과거를 갖고 있었어요. 이때 저는 자칫 튀고 어색할 수 있는 저만의 색깔을 지우지 않고 주변의 채도와 적절한 조화를 맞추는 데 집중했어요. 이를 통해 독특한 재료를 사용했지만, 고유한 풍미를 갖춘 앞서 소개한 된장 디저트와 같은 포트폴리오를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과정이 막힘 없이 이루어지려면 먼저 스스로 떳떳할 수 있어야 해요. 나의 선택으로 완수했던 일들에 당당함을, 앞으로 나아갈 길에 자신감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IT 스타트업의 신입 기획자로서의 취업을 지망하는 상황에서 커리어에 확신을 갖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닐 테지만, 이 글을 읽으며 취업 준비를 하는 모든 분들이 지금 갖고 있는 재료들을 하나하나 되짚는 과정에서 단서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글 김은미 CX Manager (PM 부트캠프)
‘벅차오름’의 가치를 믿는 CX 매니저로 일하고 있습니다.
고객의 안녕을 책임지는 파수꾼을 꿈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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